매년 특정 게임에 따라 최적화 이슈가 불거지기는 했지만, 최근처럼 수많은 AAA급 대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런 양상을 띈 것은 공교롭게도 2022년부터 심각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작년 말에 출시했던 고담 나이트나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게임 완성도도 볼품없었지만, 최적화 측면마저 매우 악명 높았고 소위 말하는 '발적화 · 개적화'의 대표 타이틀이었습니다.
사실 작년에 수많은 GOTY를 휩쓸었던 엘든 링 역시 출시 초반에 디지털 파운드리에서 최적화 이슈가 해결되기 전까지 플레이를 권장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PC판 최적화 부분은 좋은 소리 듣기 어려웠죠. 더욱이 엘든 링이 버벅이는 원인을 프롬 소프트웨어가 아닌 밸브가 엘든 링을 스팀 덱에서 원활히 구동시키기 위한 셰이더 사전 캐시 업데이트 과정을 통해 해결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PC판 발적화…,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1. PC의 너무나 많은 조합
사실 최적화 이슈가 생기는 이유는 아래 언급하는 모든 이유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하나씩 나열해 본다면 첫째, PC는 맞춰야 할 세팅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PS5처럼 하나의 하드웨어와 하나의 OS에 맞춰 최적화를 진행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고려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A가 산 PS5와 B가 산 PS5 모두 동일 스펙이니 하나의 세팅에 맞춰 최적화를 진행하고 퍼포먼스 모드와 퀄리티 모드 정도로만 옵션을 구분해 주면 모두가 만족하며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PS5 대비 XSX(XBOX 시리즈 X)만 하더라도 더 낮은 사양의 XSS(XBOX 시리즈 S)의 존재로 인해 일부 게임의 품질/최적화에서 손해를 보고 있기도 합니다. 하위 제품인 XSS에서도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게 늘어나고 포기해야 할 게 생기는 셈이죠. 단 2개만 되더라도 이런데, PC는 CPU부터 VGA, 메모리 등 다양한 부품의 조합으로 개개인의 사양이 천차만별이고 이들이 사용하는 OS 버전도 제각각, 설치된 드라이버도 몇 년 동안 업데이트를 안하는 분부터 새로운 버전이 나올 때마다 업데이트하는 분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PC 조합이 가능한 셈이죠.
과거에 락스타 게임즈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고 현재 너티 독에 근무하는 캐릭터 아티스트 델 워커Del Walker가 아래와 같은 트윗을 남기기도 했는데요.
"콘솔용 게임을 만들 때는 한 세트의 드라이버/하드웨어용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PC용 게임을 만들 때 900개 이상의 가능한 조합으로 만듭니다.
게으름이 아니라고 약속할게요. 정말 정말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말은 타이밍이 참 중요하죠? PC판 최적화 이슈가 연이어 발생하며 PC 게이머들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는 최근 상황이었는데요. 멋진 리메이크와 최적화를 동시에 거둔 바하 RE: 4 개발자도 아니고 올해 최악의 PC판 이식작 1, 2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너티 독(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과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스타워즈 제다이: 서바이버)와 관련된 인물이 이 같은 말을 남기는 것은 핑계를 둘러대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면서 많은 게이머에게 빈축을 샀습니다.
2. 회사는 결국 수익 높은 쪽으로 투자한다
만약 PC판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면 아마 하지 말라 해도, 개발자들은 PC판을 신경 써서 만들 것입니다. 쉽고 명쾌한 이유죠.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코로나 19 이후 비디오 게임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코로나 초기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집에서 자가 격리하는 동안 여유 시간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아래 북미 집계만 보더라도 2천만 명 이상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완만하게 늘어나던 게임 이용자가 코로나 19 이후 2년 사이에 북미에서만 2천만 명 이상이 유입되었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 닌텐도 스위치(NSW)의 독점 게임인 '모여봐요 동물의 숲' 같은 이른바 힐링 게임이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제조 공장의 가동 중단이 맞물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스위치, PS5, XSX 모두 품절 대란이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중고 거래 시장에서도 웃돈을 주고 거래하는 되팔렘이 성행했고, 일부 악덕 업자들은 온라인 판매를 열어두고 가격을 부풀려 100만 원 상당에 판매하거나, 악성 재고 게임을 끼워파는 등의 작태를 보였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PC 게임 산업이 유난히 강한 대표적인 국가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콘솔 게임이 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세계적으로 콘솔 품절이 이어지는 시기에 PC 업계는 가상 화폐 채굴 열풍이 불면서 VGA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인 싯가로 치솟자, 저렴하게 PC를 구입하려는 사람들까지 콘솔 시장으로 돌아서게 만들었고, 이것은 더욱더 콘솔의 인기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의 비디오게임 산업 협회인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협회(Entertainment Software Association, ESA)에 따르면 미국 게임 이용자의 52%가 콘솔을 이용하고 있으며 PC 43%, 태블릿 디바이스 26%, VR 디바이스 7% 순으로 나타났는데요.(내용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해외 콘텐츠시장 분석보고서) 더 많은 게이머가 있는 시장이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에 콘솔 시장에 역량을 집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벌어들이는 수익은 적은데 최적화 난이도마저 수 많은 조합을 체크해야하는 PC보다, 돈도 되는데 심지어 콘솔판 개발이 압도적으로 쉽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이죠.
3. 길어진 개발 기간과 비용 상승
하이엔드 PC 하드웨어의 성능은 PS5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불과 얼마 전만 하더라도 멀게만 느껴졌던 4K 게임 플레이는 손쉽게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성능을 뽐내는 그래픽 카드가 대거 등장했습니다. 심지어 하드웨어의 성능 발전에 더해 낮은 해상도로부터 더 높은 해상도로 업스케일링 하여 더 높은 프레임을 구현하는 업스케일링 기술(DLSS, FSR, XeSS)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DLSS 같은 업스케일 기술은 게임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일부 게임에서 엄청난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데요. 레이 트레이싱 기술과 맞물려 더 사실적인 광원 효과를 제공하면서도 높은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최고의 그래픽 품질을 자랑하는 PC 게임이 이제 콘솔 기기는 따라가기 힘들 만큼 엄청난 성능 격차를 이루어 낸 것이죠.
하지만 이런 효과가 매우 탁월해서일까요? 분명히 콘솔보다 압도적인 성능 격차를 보여주어야 합니다만, 사양 대비 PC판에서 성능이 심하게 떨어지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혹자는 콘솔판은 최적화 신경 쓰고, PC판은 DLSS 있으니깐 성능으로 찍어 누르면 돼!' 같은 느낌으로 개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고 생각할 정도이죠. 물론 개발자가 이런 마인드로 만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이유는 바로 개발 기간에 따른 지출 비용의 상승이죠.
최근 AAA급 게임의 개발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뿐만아니라 마케팅 비용에만 수백억 원을 쏟아붓는 개발사들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게임 개발과 홍보에 엄청나게 큰 비용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에 출시가 지연되면 될수록 그에 따른 부대 비용 지출이 끊임없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런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가장 노력 없이 빨리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버그 좀 있고 최적화나 완성도는 좀 떨어지더라도 일단 출시 먼저 하는 방법이죠. 게이머를 위해서라면 선택하지 말아야 할 방법이지만, 기업 입장에서 가장 쉽고 빠른 길이자 유통사와 사전 협의했던 계약도 준수할 수 있으니 법적인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까지 지출만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숨에 게임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반전을 일으키는 마법 같은 방법입니다. 물론 개발사, 게임 IP 등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근시안적인 임시방편일 뿐인데요. 만약 여러분에게 매달 나가던 대출금이 사라지고 수익이 들어오는 달콤한 유혹이 있다면? 쉽게 뿌리치기는 힘들 것입니다.
4. 셰이더 컴파일과 VRAM
앞서 언급한 라오어 PC판 등이 셰이더 컴파일로 인한 스터터링이 심했던 타이틀 중 하나입니다. 셰이더 컴파일은 쉽게 말해 게임상에서 표현되는 그림자, 광원 등을 위한 셰이더를 VGA가 실행할 수 있도록 변환해주는 과정입니다. 여기에는 동적 셰이더 컴파일, 정적 셰이더 컴파일 등의 방법이 있으나 어려운 이야기는 피하고요. 간단히 말해 셰이더 컴파일은 게임 그래픽에 매우 중요한 것으로 어떤 옵션, 어떤 코드로 작성하는지에 따라 게임 성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년에 많은 GOTY를 수상했던 엘든 링 PC판이 셰이더 컴파일로 인한 스터터링 이슈가 심각했던 게임 중 하나인데요. 이에 대해 Valve의 개발자들은 스팀 덱에서 엘든 링을 원활하게 구동시키기 위해 셰이더 사전 캐싱을 도입하여 낮은 사양의 스팀 덱에서도 원활하게 구동할 수 있도록 수정했습니다. 디지털 파운드리 분석에 따르면 이것은 실제로 원활하게 작동했는데요. 셰이더 컴파일 처리에 따라 게임 경험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개발자가 이처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뛰어낙 개발 역량과 환경, 그리고 스팀 덱이라는 어찌 보면 UMPC 지만 콘솔 처럼 동일한 조건이 제공 되기 때문에 보다 빨리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너와 나의 차이다! 게이밍 PC에서도 스터터링 이슈가 있던 엘든 링 PC판을 훨씬 낮은 사양인 스팀 덱에서 원활히 구동시키는 밸브!
그리고 VRAM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게임에 따라 대세 콘솔에 맞춰 개발하고 PC판은 이식시키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PS 퍼스트 파티 게임이라면 애시당초 PS판을 먼저 출시하고 한참 뒤에 PC판을 출시하기 때문에 더욱 그럴 텐데요. 여기서 VRAM 이슈가 생기기도 합니다. 셰이더 컴파일에 이어 VRAM 이슈로도 좋은 예시가 바로 라오어 PC판입니다.
라오어 파트 1은 PS5를 위해 리메이크된 게임입니다. 라오어의 모든 그래픽과 게임 경험은 PS5에 맞춰서 디자인되었죠. PS5에 탑재된 16 GB의 메모리 중 3.5 GB는 운영체제를 위해, 나머지 12.5 GB는 게임을 위해 사용됩니다. 디지털 파운드리의 Richard Leadbetter는 라오어 PC판의 성능 문제를 지적하며, "라오어 파트 1은 개발자가 사용할 수 있는 메모리가 약 12.5GB인 콘솔을 중심으로 구축된 PS5 독점작입니다. 하지만 PC 시장의 가장 많은 사용자층이 있는 곳은 VRAM 8GB입니다. VRAM 8GB의 그래픽카드에서 텍스처 높음을 설정한다면 극심한 스터터링으로 인해 매우 굴욕적인 경험을 하게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라오어 PC판에서 이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10~11GB 이상의 VRAM을 지닌 그래픽카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마저도 광원 효과 버그 등으로 사실 어떤 PC에서조차 PS5 수준의 퀄리티로 구동할 수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또한 라오어는 최악의 PC 이식판으로 손꼽히는 작품답게 CPU 성능 이슈도 지녔기 때문에 총체적 난국이지만요.
PS5나 XSX 같은 최신 콘솔에 맞춰 개발한 작품이라면 더욱 PC판 VRAM 최적화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라오어 PC판이 나쁜 쪽으로 좋은 예시였다면 반대로 이것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증명한 게임 역시 플스의 퍼스트파티 게임인 마블 스파이더맨 시리즈입니다. 스파이더맨은 소니가 자회사로 인수한 포팅 전문 개발사인 닉시즈 소프트웨어Nixxes Software를 통해서 PC판으로 완벽하게 이식한 바 있습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2023년에 출시한 최악의 PC 이식작을 짚어보고 PC판에 최적화 이슈가 발생하는 여러 요인을 살펴봤습니다. PC 게이머들은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가장 완벽한 게이밍 경험을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하는 편입니다. CPU와 메인보드, 그래픽 카드에만 수백만 원을 기꺼이 들이고, 게임의 여러 설정을 매만지죠. 이들이 바라는 것은 최고의 게임을 최고의 환경에서 플레이 하거나, 혹은 MOD 적용 등 같은 게임이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하고 싶은 분이 많습니다. PC판만의 이런 강력한 장점들로 인해 전원을 켜고 게임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콘솔 대신, 멀티 플랫폼 게임이라면 일부러 PC판으로 즐기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최적화 이슈가 계속된다면, PC 게이머가 많은 돈을 들이고 수고를 더한 PC 게이밍은 6~70만 원 대 콘솔보다 게임 경험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이미 많은 게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PC에 비용을 투자하느니 콘솔 게임기를 구매하는 것이, 비용적으로 훨씬 저렴하면서 게임 경험도 쾌적하고 즐겁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피해는 PC 게이머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고, 이들이 이탈하게 되면 PC 시장과 PC 게임 시장은 더욱 줄어들며 악순환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종국에 게임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PC 스팀 게임은 퀘이사플레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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